천천히, 느리게, 있는 그대로
피에르 쌍소

게으르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슬기로움이나 너그러움의 한 형태다.
물러났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한가로이 거닐기, 남의 말 들어 주기, 꿈꾸기, 글쓰기 따위처럼
사람들이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버려진 순간에 깃들여 있다.
존재의 아름다운 순간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은 놀라움의 순간이다. 여전히 살아 숨쉬는 순간이고,
당신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한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 순간이다.
웃음을 띤 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러한 순간이다.
게으름은 어디 아픈 것처럼 꼼짝도 하기 싫어하는 증세가 아니다.
천천히, 느리게, 있는 그대로 삶을 누리려는 몸가짐이자 마음가짐이다.
아주 천천히 가고 있어서 삶의 저물녘에, 막바지 노을 속에서,
영원히 저녁 빛을 숨쉬는 그러한 능력이 게으름이다.

- 피에르 쌍소(1928-2005 · 철학자)의 《게으름의 즐거움》(함유선 옮김, 호미, 1997년)에서
- 2009년 4월호《성서와 함께》 '머릿돌' 글(편집부 발췌)